홍제
울지 않으면 죽는다 / 신기섭 본문
1
세상에 나올 때 나는 울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나를 때렸다고 한다 오늘은 보답하듯 나도 그녀의 가슴을 때렸지만
2
당신이 기르던 새를 내가 맡았네 당신 박수 소리에 울음을 울던 새 내 박수 소리에는 울지 않는 새 가만히 보니 방전이 된 새 그 가슴을 열고 힘 세고 오래간다는 심장을 넣어주네 딸깍, 피 한 방울 같은 붉은빛으로 새의 귀가 밝네 내 박수 소리를 듣는 순간 눈꺼풀처럼 핏빛이 깜박이네
귓속에서부터 몸속까지 울음의 시간을 전하러 스며드네 뱃속에 품은 알, 전구가 부화할 듯 환해진, 새는 그러나 울지 않았네 울음 터뜨리지 않는 갓 태어난 아기 때리듯, 새를 때렸네 그러자 다행히 파란 하늘은 건드리고 온 듯 점점 푸르게 밝아지는 새의 플라스틱 날개 그 두 눈 속에는 분홍빛 동공이 한 점씩 새겨지네 울음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 울음임을 알았을까 울음으로 꽉 잠긴 듯 환해진 새 다시, 박수를 치네 새를 울리네 또, 울지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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