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 / 유희경 본문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는
혼자서 종을 울릴 줄 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그럴듯한 비유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뜰에 놓인 벤치 쪽으로 걸어간다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는 방금
종을 울렸다 뜰을 쓰다듬는 종소리
본관은 어디일까요
나는 두 개의 건물을 놓고 묻는다
때마침 서 있던 남자는
왼쪽 건물을 가리킨다 나는
그러겠다 생각했다 왼쪽이구나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는
하얀 공을 찾아 뜰을 뒤질 수도 있고
사람을 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누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왼쪽 건물로 가야 해
하지만 망설인다 때마침 서 있던 남자가
왼쪽 건물로 들어갔으므로 혹시,
그곳이 본관 건물이 아니라면
그도 나도 무참히 무색해질 것이므로
초면에 그럴 필요가 없잖아 나는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의 털을 빗어주고 싶다
새처럼 날아오른 종소리는
구월 바람처럼 솟구쳐 올라서
한낮의 볕으로 반짝이고 있다
보이니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야
늙었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거란다
나는 아직도 망설이는 중이다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의 털을 빗어주는 기분으로
때마침 서 있던 남자를 믿지 못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왼쪽이 아니면 오른쪽인 것이지 그러나
한 번쯤은 더 들어보고 싶구나 종소리를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개 파블로프야 사랑을 알려주렴
뜰 안에는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나무벤치 한 개와
아무튼 있었던 사내와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 말고도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가 울리는 종소리 말고도
나 말고도
본관과 신관 사이 뜰 안에는 무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