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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 / 유희경 본문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 / 유희경

홍제 2023. 3. 27. 13:22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는

  혼자서 종을 울릴 줄 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그럴듯한 비유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뜰에 놓인 벤치 쪽으로 걸어간다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는 방금

  종을 울렸다 뜰을 쓰다듬는 종소리

 

  본관은 어디일까요

  나는 두 개의 건물을 놓고 묻는다

  때마침 서 있던 남자는

  왼쪽 건물을 가리킨다 나는

  그러겠다 생각했다 왼쪽이구나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는

  하얀 공을 찾아 뜰을 뒤질 수도 있고

  사람을 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누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왼쪽 건물로 가야 해

  하지만 망설인다 때마침 서 있던 남자가

  왼쪽 건물로 들어갔으므로 혹시,

  그곳이 본관 건물이 아니라면

  그도 나도 무참히 무색해질 것이므로

  초면에 그럴 필요가 없잖아 나는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의 털을 빗어주고 싶다

 

  새처럼 날아오른 종소리는

  구월 바람처럼 솟구쳐 올라서

  한낮의 볕으로 반짝이고 있다

  보이니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야

  늙었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거란다

 

  나는 아직도 망설이는 중이다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의 털을 빗어주는 기분으로

  때마침 서 있던 남자를 믿지 못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왼쪽이 아니면 오른쪽인 것이지 그러나

  한 번쯤은 더 들어보고 싶구나 종소리를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개 파블로프야 사랑을 알려주렴

 

  뜰 안에는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나무벤치 한 개와

  아무튼 있었던 사내와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 말고도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가 울리는 종소리 말고도

  나 말고도

  본관과 신관 사이 뜰 안에는 무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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