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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정말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사랑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장난쳐야지 따라와봐라 좋아한다는 걸 자제해야지 비밀을 가지고 싶어서 비밀을? 그래야지 더워 추워 소리를 내야지 모르는 채 바라보면 순간 생겨나는 게 있고 자웅동체 의성어 생김새 의성어 생김새? 본떠야지 그것은 제비꽃 그것은 그네 소리내야지 정말 좋아한다면 해야지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도 꾸물거리는 작은 것의 빛을 바라봐야지 꾸물거리는 무엇이 있으니 비켜서야지 말아야지 좋아한다면 두 개의 머리를 갖고 놀아야지 아침 목소리를 만들어야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끝에 불과하고요 해야지 정말 좋아한다면 나가려는데 누구를 그리워한다면 해야지
내 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 내 머리 위에 물 양동이를 올리며 말했지 자, 작은 새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배달해주렴 나는 어지러웠어 태어나자마자 걷고 있는 자신이 무슨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물 양동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모두가 그런 양동이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으므로 수긍했지 날개는 늑골 아래 감춰두고 새는 잘 접어두었어 너의 새는 어디에 있어? 물어올 때면 한참을 생각해야 했어 책장 사이에 넣어두었다고 대답할 때도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고 말할 때도 있었지 시간은 핀셋을 들고 흰머리를 제거하려는 집요한 손처럼 굴었어 나는 아직 내가 새인지 새의 탈을 쓴 인간인지 이 양동이는 무엇을 위한 질문인지 대답인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바닥을 나뒹구는 주인 없는 양..
아카시아 가득한 저녁의 교정에서 너는 물었지 대체 이게 무슨 냄새냐고 그건 네 무덤 냄새다 누군가 말하자 모두가 웃었고 나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다른 애들을 따라 웃으며 냄새가 뭐지? 무덤 냄새란 대체 어떤 냄새일까? 생각을 해 봐도 알 수가 없었고 흰 꽃잎은 조명을 받아 어지러웠지 어두움과 어지러움 소에서 우리는 계속 웃었어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함께 웃는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는데 웃음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어 냄새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기에 우린 이렇게 웃기만 할까? 꽃잎과 저녁이 뒤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너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 사람, 그게 아마 예쁘다는 뜻인가 보다 모두가 웃고 있었으니까, 나도 계속 웃었고 그것을 멈..
그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불길 속을 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말은 믿을 수가 없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늦가을 밑동만 남은 수수밭에 불을 지르고 그 위를 걸었다. 그는 그 때문에 그곳에 갇혔으나 내게 마음의 짐을 가지지 말라고 말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 내게 편지를 보냈고 나는 그 편지를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그에 관여했다. 그와 내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게 진짜 사랑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이미 증명을 마친 수학자의 얼굴로 나에게 편지를 건넸다. 그는 나의 울음이 멈출 때까지 내가 울면서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편지가 젖거나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