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의 일기
페이스북에서 발견한 6년 전의 일기. 그걸 약간 수정한.
얼마 전부터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에 매니저로부터 안내문 한 장을 받았다. 건물 임대차 계약이 끝나 17일까지만 운영을 하게 되었고, 인근의 독서실과 미리 협의를 했으니 혹시 잔여 기간이 있다면 추가적인 금액을 부담하지 않고도 그곳을 이용할 수 있으며, 또 굳이 18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리 독서실을 옮겨도 무방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독서실의 사람들이 점점 나가기 시작했고 마지막 날인 오늘 여기에는 아무래도 나와 매니저 둘만 남아 있는 것 같다. 괜히 내가 끝까지 남아서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매니저는 평소에도 자리를 비우고 자주 피씨방에 가곤 했으니 아마 괜찮을 거라고 그냥 혼자서 생각하고 있다.
잔여 기간 동안 다니게 될 독서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곳의 내부를 찍은 사진을 몇 장 봤는데, 아이비리그의 도서관을 본떠 만들었다는 그 시설은 한눈에 봐도 지금 내가 있는 곳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굳이 좋은 시설을 갖춘 그곳으로 미리 떠나지 않은 이유는 요즘 들어 매니저와 나누기 시작한 무언의 목례에 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 마주칠 때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목례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대략 한 달정도를 가족과의 필수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현실에서 누구와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내게 그 목례는 거의 유일한 타인과의 접촉이었고 그게 내겐 어느정도 도움이 됐다.
아까 저녁을 먹고 이곳으로 온 뒤 빈자리들을 둘러보며 잠시 생각했다. 대체 뭘 먹는지 자꾸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서 한 대 치고 싶었던 고등학생도 없고, 몰래 웃긴 걸 봤는지 자기도 모르게 킥킥거리다가 괜히 헛기침을 하던 앞자리 사람도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슬퍼지고 외로워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내일 나는 아이비리그에 있겠지만, 만약 매니저가 피씨방에 가있는 게 아니라면 잠시 후 짐을 챙겨서 나갈 때 그와 잠깐의 목례라도 나눌 수 있을 테고, 시간이 흘러 한 대 치고 싶었던 고등학생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기가 막히게 서로를 알아본다고 해도 목례를 했으면 했지 정말로 주먹을 날릴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