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의 회전 / 황유원
빌리 홀리데이, 그렇게 불리는 병이 있다면
속에 담겨 푹 익어 가고픈 휴일이야
그동안 당신이 부른 노래를 전부 병에 담아 익히면
어떤 맛의 병조림이 될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고
그럴 때 미래는 우리가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는 병조림 속 피클이어서
그것은 선반 위에도 있고
찬장 안에도 있게 된다
빌리 홀리데이, 그렇게 불리는 병이 있다면
그 모든 불치병에 걸려 남몰래 죽어 가고픈 나날들
삶은 본래 뻔한 거지만
가장 뻔한 가사를 가장 곤란하게 부르는 게 가수지
나와 나 사이를 아주 멀게 하는 생각들이
나와 나 사이의 다리들에 활활 불을 질러
불덩이가 되어 버린 다리가 강 위로 힘없이 무너지고 있을 때
나와 내가 이렇게 서로 기댄 채 구경하며
함께 노래하지 않으면 좀 곤란해
누가 뭐래도 가장 부르기 곤란한 가사를 가장
느긋하게 부르고 있는 게 가수고
당신은 벌써 죽었는데
버젓이 산 채로 당신 노래를 듣고 있는 내가 이다지도 곤란해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웃긴 노릇이 아닌가
자꾸 그렇게만 여겨져서
빌리 홀리데이, 마지막으로 그렇게 불리는 병이 있다면
들고 한 번에 다 마셔 버린 후 밖에 나가 좀
걷다 와야만 할 것 같은 휴일이야
고작 빈 병 하나로 무얼 할 수 있겠어?
병 속에 편지라도 쑤셔 넣고 떠내려 보낼 작정이 아니라면
거기 한 송이 꽃이라도 꽂아 줘야지
그걸로 누군가의 대가릴 후려칠 용기마저 없다면
강변에 핀 치자꽃이나 한 송이 꺾어 머리에 꽂아 준 다음
볕 잘 드는 창가에 놓아 줘야지
그러면 어느새 취해 버린 꽃은 다시 무대에라도 오른 양
온 방안에 넘실대고 있고
너나 나나
인간은 하나의 소음
그건 자기 전에 끄는 불처럼 한번
꺼 볼 수도 없어서
둘 다 술이 확
깰 때까지 나도 같이 실실대면서
옆에서 그걸 가만히
지켜봐 줄 수밖에
침대 위에서 밤새 뒤척이는 사람의 구겨진 이불이 그리는
선들의 궤적으로
오래된 베개 냄새 풍기는 강이 머리 둘 곳 찾아 밤새 이리저리
흘러다니는 음성으로
잠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