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 / 황인찬
이 시에는 바다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 시는 우리가 그 여름의 바다에서 돌아온 뒤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과 그것이 우리 삶에 불러일으킨 작은 변화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느 토요일 오후 책장에 올려둔 소라 껍데기에 귀를 대며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부러 확인한다거나, 한 손에 국자와 젓가락을 쥔 채 개수대로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갑자기 떠오른 지난 여름의 대화들에 혼잣말로 답해본다거나,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라게 된다거나
뭐 그런 일들
어느 주말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까맣게 탄 그와 함께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 아름다운 것이 매달려 있었다
"이게 뭐지?"
그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을 때는 어째서인지 그것을 설명하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답하는 대신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던
돌이켜보면 아마 그는 우리가 결국 이 시의 마지막에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밤에는 늦도록 잠들지 않았다
즐거웠던 지난 일들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폭죽 불꽃이 터져오르는 해변에서 불을 피우며 여럿이 어울려 춤을 추었던 그 밤과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태풍이 찾아와 살풍경한 해변을 웃으며 걸었던 일 따위에 대해 아주 짧았고 그래서 충실했던 날들에 대해
손을 잡은 채로,
손에 매달린 아름다운 것을 서로 모르는 척하며
그렇게 그 장면은 끝난다
이제 이 시에는 바다를 떠올린다거나, 바다에서 있었던 일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과 그 생활 따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여름과 그 바다가 완전히 끝나버렸는데도 아무것도 끝난 것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것이고
영원히 반복되는 비슷한 주말의 이미지들에 대한 것이고
내 옆에 누워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박한 기쁨과 부끄러움에 대한 것뿐
그렇게 삶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