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2 / 장혜령
한번은 이런 시를 읽었다. 전에 읽은 「검은 돌은 걷는다」를 쓴 사람의 또다른 시였다. 제목은 「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그 시의 첫 행은 이러했다.
"저것 봐, 어둠 속 검은 새 한 마리가 있어."
그가 기리키는 검은 새를 한번 따라가보자고 생각하며 그것을 읽었다. 그러면 나도 이 시를 쓴 사람처럼 어둠 속 검은 새 한 마리를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둠으로부터 검은 새를, 흑(黑)으로부터 다른 흑을 구별하려면 얼마나 오래 그 속에 머물러야 하나. 종일 어둠을 기다렸다. 끝내 밤은 왔다. 기다림 끝에도 나는 볼 수 없었다. 내가 작은 한숨을 쉬자 시 속의 누군가 말했다. 처음 새를 가리킨 사람과는 다른 목소리였다.
"날개가 불타는 검은 새가 있다. 검은 새의 날개가 검게 불타고 있다. 가지에 부딪혀 부서지면서도 날아가는, 날아가면서도 부서지는 날개가 있다."
그때, 내 방 창가로 한 마리 새가 날아들었다. 커튼이 드리운 창으로 나는 새 그림자만을 볼 수 있었다. 새 그림자는 가로등 불빛 아래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다시 저 가지에서 이 가지로 뜻없이 옮겨다니고 있었다. 문장 속 새가 한 문장을 전복한 다음 문장으로, 또 한 문장을 전복한 다음 문장으로 옮겨다니듯.
"부서지는 것은 부서지는 것. 부서지는 것은 부서져가는 것. 부서져가며 날아가는 것. 날아가며 빛을 내는 것. 빛을 되쏘는 어둠이 있다."
나는 책장을 덮고 조심스럽게 창 쪽으로 다가갔다. 그것은 어른거리는 검은 불처럼, 무언가의 혼처럼도 보였다. 시 속의 한 단어가 의미가 비슷한 단어에서, 또다른 단어를 향해 날갯짓하며 멀어지듯, 커튼을 젖히자 그것은 사라져갔다. 나는 그것이 새 그림자인지 새 유령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크고 붉은 동백의 곁이었다. 잎사귀 아래 둥근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얼음 아래 냇물은 흐르고 있었다. 꿈처럼 물은 흘러갔다. 흐른다는 것만이 사랑임을 깨우쳐주듯. 숨죽여 나는 듣고 있었다. 검은 새가 흔들고 간 검은 나무 한 그루 있었다. 검은 새의 부재를 밝히는 검은 울음소리 있었다."
고개 들자 창밖은 새벽이었다. 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그 속에 깃든 풍경은 입김이 닿는 순간 사라질 듯 아득했다. 그러나 흑이 지나간 자리에 흑은 깃들어 있었다. 흑이 부재한 자리에 흑의 부재는 나타나고 있었다.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것을 붙잡아두고 싶어서, 나는 공책에 시의 문장을 따라 적었다.
"눈이 다 녹기 전에 나는 이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당신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며 걸었다. 당신은 없고 당신은 보이지 않고 오직 이것만이 길이라는 듯. 지우면서 지워지면서 따라가는 걸음 있었다. 깊어지면서 부드러워지는 색의 침묵 있었다. 길가의 검은 돌들은 검게 빛나고 있었다."
새벽 공기를 들이려고 창문을 열었다. 밤새 눈 쌓인 골목에 이웃 노인이 비질하는 소리, 신문 배달부가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담장 아래 눈을 맞은 꽃 한 송이가 보였다. 꽃은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피어 있었고 피어서도 꿈꾸고 있었다. 죽는다는 것처럼, 다시 살아간다는 것처럼. 나는 다시 공책에 내가 얻은 문장을 이어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꽃은 눈먼 초록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초록의 꿈으로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