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친구에게 / 신해욱

홍제 2023. 4. 24. 16:31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

 

  안녕. 친구.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

 

  냉동실에 삼 년쯤 얼어붙어 있던 웃음으로

  웃는 얼굴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너만 좋다면

  내 목소리로

  녹음을 해도 된단다.

 

  내 손이 어색하게 움직여도

  너라면 충분히

  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답장을 써주기를 바란다.

 

  안녕. 친구.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