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핸드 / 조용우

홍제 2023. 4. 25. 10:30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 주스, 요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 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