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기념관 / 황병승

홍제 2023. 6. 11. 16:15

  총을 버려

  눈을 감고

  비를 약속해

  셋 둘 하나

  셋 둘 하나

  계단을 거꾸로 세며

  이름을 지워

  마른 가지를 들고

  나무를 고백해

  새를 질투하며

  나무는 하늘을 고백해

  숲을 고백해

  방아쇠는 옳고

  손가락은 추하다.

  덜 마른 도화지처럼

  축축한 하늘

  나비는 오락가락 붓질을 하며

  그림을 망치고......

  비가 내리면

  치마 속에서

  셋 둘 하나

  셋 둘 하나

  총알이 지나간 혓바닥으로

  연애편지를 쓸 테야

  피는 아름답지만

  키스는 얼얼하지요

  달력의 숫자는

  아ㅡ 유리컵처럼 입을 벌리고

  붉은 꽃을 기다려.

  고백을 해야 하는데 고백을

  나무를 고백하고

  하늘을 타는 숲을

  고백하는 나의

  우물쭈물하는 입술은

  꼭 잡채 같겠지

  고백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제껏 고백하지 못했다,

  고백함으로써 단 한 번만이라도

  고백해볼까

  그때, 가뭄 속에서

  나무는 새를 쏘았지

  새 날아가고 숲만 쓰러졌지

  나의 이름은 구멍 난 혓바닥

  검은 꽃에 앉아

  나비는 검은 글자를 썼지,

  고백하는 나의 두 눈은

  죽음의 콧구멍, 닮았겠지만.

  눈을 감고

  총을 들어

  비가 내리면

  셋 둘 하나

  셋 둘 하나

  빗소리를 거꾸로 세며

  손가락은 옳고

  방아쇠는 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