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사거리 / 신기섭
읍내 사거리에 가면 중앙약국이 있다
우리 동네 영란이 누나가
약사 보조로 일하고 있다
거미줄같이 침착한 주름의 약사,
언제나 내가 다른 병을 얻어 들르는 날에도;
변비는 어때요? 꼭 묻곤 한다
읍내 사거리에 가면 문방구 '종이나라'가 있다
초등학교 때 물체주머니 훔치다 잡힌 경력 탓에;
호적에 시뻘건 줄 죽죽 그어지면
빨갱이처럼 인생 조지는 거라!
할머니 말씀, 아직까지 듣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주 인생을 조지진 않았지만
읍내 사거리에 가면 담배 파는 신발가게가 있다
고등학생들도 담배를 산다
그곳에서 신발을 사는 이들은
노인들뿐 청년들은 담배만 산다
청년들은 그곳을 담배가게라고 부른다
한 번 그곳에서 신발을 사 신은 나는
동창들에게 늙은이 취급을 당했다
읍내 사거리에 가면 왕순댓집이 있다
장날마다 극장처럼 사람들은 줄을 서고
검은 봉지 속에 한가득
순대를 돌무덤같이 담아간다
오래 기다린 입덧처럼 봉지가
불끈불끈 흰 김을 토해낸다
읍내 사거리에 가면 꽃집이 있다
그 위층에는 辛치과가 있다
꽃냄새와 약 냄새처럼
그 치과 간호사와 나, 연애를 했다......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씩 늘 사서
계단에다 놓아두곤 했다 어느 날,
장미를 짓밟고 그녀는 퇴근을 했다
읍내 사거리에 가면 다방이 두 개 있다
산유화 다방과 개미 다방
산유화는 늙은 레지들이 많고
개미는 어린 레지들이 많다
산유화 레지들은 밤마다 술집을 돌고
개미 레지들은 밤마다 여관으로 간다
읍내 사거리에 가면 나에게 침 뱉는 법과
좆춤 추는 법을 가르친 선배들이 있고
장날마다 땅바닥에 뒹구는 몇 알의 튀밥이 있다
어린아이들도 누구나 다 침을 뱉고
여자아이들은 여관처럼 잘 더러워진다
한번 이 읍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은
겨울잠을 자고 온 곰처럼 온순하지만
금세 다시 사나움을 되찾고 만다
그리고, 다시는 떠나지 않는다
읍내 사거리에 가면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