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기민히 사라진 / 손유미
홍제
2024. 2. 12. 17:49
과거형으로 말해줄래?
단속을 마치고 문을 닫듯이,
오래 헤맨 문장에서 네가 빠져나가려고 하네
그래 과거형으로 말할게
달리 부를 수 없는 나의 동성 지인에게
그날의 우리는 공터에 드러누운 들개 같아서
충분히 길들었는데, 그걸 모르는 들개 같아서
너른 공터를 모두 내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누워 있을 때조차 힘이 넘치던 나의 대퇴근과 너의 둔근을 어쩔 줄 몰라 절절매던
밤이 아침으로 날들로 시간이
곤두박질쳐서 오늘로
나는 누워 있어. 과거형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누워 있었다. 누워 함께 떨며 지켜봤지 우리 대신 전속력으로 내달리던 덩치들을 충분히 바라봤다 쫓기는
심정 달리 부를 수 없는
심정 밤과 아침의 날들을 두들겨 패서 만든
곤죽을
손아귀에서 뚝뚝
떨어뜨리며 우리 누워서
말했다
그날
우리가 덩치들보다 먼저 내달렸다면 머리를 풀고 힘껏 근육을 써서 달렸다면 맞이했을지도 모를 모든 풍경을
잔뜩
떠올리다가 순간,
동성의 지인이었던 사람아, 사라지니
사라졌다
그날 내가 뺏지도 않고 빼앗긴 것들에 대하여 말을
꺼내기도 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