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는 손 / 이설빈

홍제 2024. 4. 30. 22:04

 

 벼랑에 맺힌

 불길한 사과처럼 천진하게

 나는 낙하할 것이다

 몸부림치는 씨앗에게로

 

 소스라치는 너의 속눈썹에게로 겨울은

 그을린 외투 주머니를 탈탈 털어대고

 나는 불의 첨탑을 서둘러 완성하고

 내가 뉘우칠 수 없도록 짓무른

 열매를 위한 허공은 마련하지 않는다

 

 그 끝에 움트는 장미의 장막이

 익어가는 사과가 어떻게 피를 흘리는지를

 네가 모르게 하고 네가 투명한 종처럼

 슬픔의 원주를 터뜨리기 직전에

 내가 어째서 뿔 달린 사막이 되어야 하는지를

 나도 모르게 하고

 

 모닥불의 손바닥이 피워 올린 사랑이

 우리를 벗어나 뉘우치는 불빛

 가장 가까이 퍼덕일 때

 나를 몰아세운 파도와

 파도의 무수한 벼랑을

 기꺼이 잊게 할 때

 나는 너의 절망이 되고

 너는 절망이 삼킨

 나의 비겁이 되고

 나의 비겁이 되고

 

 우리를 비집고

 터져 나오는 난폭한 중심을

 우리가 심장보다 깊숙한 뒤에서

 단단히 움켜쥘 때 나는

 너라는 진앙을 끓어 넘쳐

 우리를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