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망의 거리 / 김소연

홍제 2024. 5. 9. 08:37

 

 우리는

 서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빗방울에 얼굴을 내미는

 식물이 되고 싶었다고 말할 뻔했을 때

 

 너,

 살면서 나는...... 살면서 나는......

 그런 말 좀 하지 마

 죽었으면서

 

 귀가 아프네

 나는 얼굴을 바꾼다 너무 많은 얼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가면이 열리는 나무였다면

 가지 끝이 축 처졌을 것이다

 아니, 부러졌을 것이다

 

 사실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깨로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

 다가갔다 물러섰다,

 빗방울이 앉았다 넓어졌다 짙어지는

 우리의 어깨가

 얼룩이 질 때

 

 유리창 같다, 니 어깨는......

 고막이 있니, 니 어깨는......

 

 필요한 말인지

 불필요한 말인지

 알 길이 없는 이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빗방울의 차이에 대해 말할 줄 아는 사람과 마주앉아 있다

 빗방울이 되어 하수구로 흘러가는 사람이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