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밀가루의 맛 / 이혜미
홍제
2023. 2. 7. 14:26
얼음을 핥으며 오래 말을 아꼈지
케이크를 자르고 낮술을 마시던 창가에서
그 희고 연약한 윤곽을 망쳐놓으며
너는 없는 아름다움을 말했다
무심히 손을 휘저으며
미음과 리을 받침에 대해 이야기했지
나는 알곡처럼 선연하다 분명하여 부서지는 것들에 대해
같은 크기의 입자가 되어가는 것들에 대해
왜 부서져 떠돌다 싫은 덩어리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입으로 불어도 손으로 쓸어도 자국을 남기던 눈송이들
얼어붙은 잔설이 회색으로 얼룩진 그 창가에서
흰 가루라면 무엇이든 슬프던 계절이 지나간다
눈처럼 녹아 사라질 줄 알았는데
끈질기게 혀에 붙어 끈적이는
더럽고 슬프고 무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