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러 가 / 김누누

홍제 2023. 2. 13. 09:51

  온종일 물놀이를 신나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가 잘라 놓은 수박이 있다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와구와구 수박을 먹으면

  바닷물과 과즙이 뚝뚝 떨어지고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수박도 안 먹는다

  그냥 가만히

  수박 먹는 나를 보는데

 

  아까 바닷가에서 어떤 사람이 나한테 인사했다?

  라고 말하자

  내일부터 바다에 가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 할머니는 처음 봤다

 

  이제 그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도시의 여름밤은 찬란하고

  아주 덥다

  애인과 공원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손을 잡은 채로 그냥 걸었다

  서로 얼굴을 보다가

  그냥 가만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가지고

 

  하얀 강아지가 너무 귀엽다

  애인은 가끔씩

  삼색 고양이처럼 웃는다

 

  이제 그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기일이 되어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다 끝난 일인 것처럼 말하는 게 미워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 버렸다

 

  저 멀리 손짓하는 누군가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이제 그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