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제 시인처럼 보인다 / 황인찬
이제 너는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은유를 쓰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싸늘한 겨울 주머니에 담뱃갑이 든 코트를 부여잡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혼자서 공원을 횡단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겨울나무가 얼마나 무심한 물건인지 추궁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무심코 도달한 거리에서 경탄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순진함을 진정성과 구분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어둑한 이 겨울에 집을 떠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손이 얼어가는 것을 무감하게 대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멀리 나는 새들의 이름을 외우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저기 굴러다니는 작은 사물들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컴컴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친근히 여기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어째서 이곳에 빛이 들지 않는지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겨울과 세계에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슬픔이 인생의 친척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눈 덮인 도로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따듯한 불가에 앉아 혼령이 부유하는 것을 알아채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한강의 겨울 오리들을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옛 연인의 얼굴을 망각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이 겨울의 길이 지독하게 고독하다는 사실에 자신을 의탁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다리 위에서 몸을 던지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그믐 아래 야습을 도모하는 미지를 원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내일의 불가능을 믿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여전히 너의 집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네가 서 있는 곳이 아직도 겨울밤의 공원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거기까지만 쓰고 다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너의 겨울 은유를 신용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밉다" 말하지 않는다 너는 이제 거의 시인처럼 보인다 너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