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칠월 / 최지은
홍제
2023. 2. 27. 15:30
비 그친 골목
물기 머금은 살구
더러운 웅덩이
새로 연 초밥집 유리 종지 포개는 소리
감자 삶는 냄새
사흘 내내 나는 같은 꿈을 꾸고
내 머릿속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한낮의 체육공원 움직임 없이 앉아 있는 나
농구하는 소녀 둘
한 명씩 번갈아 응원해 보고
포도씨를 뱉으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노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
일부러 그리워해 보는 어머니
나를 버리고 간 어머니
서른 해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이런 날이면
끝이 보이지 않는 기차가 달려와 눈앞에 멈추고
문이 열리고
얼굴을 모르는 어머니 내게 손 내밀고
당장이라도 안기고 싶지만
눈 맞추고 싶지만
굳은 두 발 돌멩이처럼 작아진 두 발
울고 있는 나의 발
머릿속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
혼잣말하는 오후
다시 태어나 볼까
나무나 햇빛 고양이처럼 완전하고 무결한 거 말고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나 그대로
어머니를 어머니로
머릿속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가끔은 알 수 없는 내 마음
열린 문 그대로 기차를 떠나보내고
내 마음 더 아프도록
기차는 영영 사라지게 두고
한순간도 빠짐없이 나는 나를 지켜봐 왔지만
가끔은 알 수 없는 내 마음
머릿속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거짓말 거짓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