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낭독회 / 조해주 본문
어두운 방에서 그가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고 나는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촛불이 어둠을 낫게 할 수 있나요?
어둠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촛불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가 눈부셨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며 왼쪽에서 오른쪽 페이지를 읽어나갔다.
우기를 견디는 나무가 다 뽑혀 나가지 않은 것을 일종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를 견디는 어둠이 다 휩쓸려 나가지 않은 것을 언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실은 엉키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풀어지지 않는 것. 나누어지지 않는 것.
손바닥과 손바닥이 겹치고 또 겹치다가
빈틈없이 메워지는 마음이 된다면 그것이 어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형태가 남아 있던 손이 몰래몰래 실을 얽어놓기도 했다.
하나로는 사라지지 않는 어둠.
촛불로는 녹지 않는 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이토록 튼튼한 마음.
나는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이제야 어렴풋이 보이는 형체들. 목소리의 모양들.
나는 이 방 어딘가에 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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