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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력住所歷 / 봉주연 본문
그렇게 나갔다가는 추울 거야.
아침저녁으로 후회하기 위해 봄날이 있는 것 같아.
늦은 저녁 놀이터에서 나란히 그네를 탔다. 뭐 이런 데서 놀아. 핀잔을 주면서도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시합을 벌였다.
식탁 아래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해. 호텔 로비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아래에 들어가기도 했다. 벙커 침대를 갖고 싶어. 어디서 그런 말을 알아 온 건지. 나는 갖고 싶은 것을 분명히 말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하는 사람을 보면 스스럽게 느껴져.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 천에서, 유연함 속에서.
어른들의 무릎까지 오는 아이들. 아이들의 정강이까지 올라온 계단 한 칸. 펜스가 쳐진 강아지 놀이터를 구경하는 사람들. 벤치를 밟고 오르면 펜스 너머를 넓게 볼 수 있다. 목을 가누는 힘을 기르라고 아이들을 일부러 엎드려 놓기도 한다.
조그만 사람에게선 갖은 애를 쓴 냄새가 난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작은 보습학원이 줄지어 있다. 하교 시간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이 지나가면 햇볕 냄새가 났다.
타향이 고향이 되는 거야. 어지럽게 짐이 펼쳐진 거실 마루에 앉았다. 반나절 만에 다른 곳으로 왔구나. 달라지기보다 달라지기를 결심하는 시간이 길고. 본가가 어디냐고 물으면 태어난 곳을 말해야 할지, 자라온 곳을 말해야 할지, 부모님이 계신 곳을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면 장소들이 남는다.
잘 자라다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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