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입체안경 / 안희연 본문
스크린은 도로를 감추고 있다.
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가 간다. 차창마다 똑같은 옆모습이 붙어 있다. 우리는 이름 대신 번호를 가졌지.
버스를 그려서 그 안에 버스를 구겨넣었어. 원을 그려서 그 안에 얼굴을 구겨넣듯이.
긴 커브를 돌았다. 두 겹으로, 네 겹으로, 여덟 겹으로...... 흩어진다는 것. 목이 등 뒤로 돌아갈 때의 속도 같은 것.
손잡이는 말했어. 한 곳에 오래 머물기 위해 유연하게 흔들리는 법.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손을 내려도 여전히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것이 있지. 오분 전의 얼굴. 삼십초 전의 가로수. 나는 나로부터 불시에 멀어지고
의자가 조금 흐트러진 것 같은데. 나는 의자의 구조에 대하여 의심을 품었다.
하루해가 저물 때까지 한 사람을 완성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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