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영화관 / 김상혁 본문
아내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녀가 도착하지 않았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서
나는 그 이야기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여주인공이 산골 마을로 들어설 때
죄송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아내가 어두운 극장으로 들어오며 자리를 찾는다
지나간 이야기를 설명해주어야 할는지?
하지만 아내는 충분히 알겠다는 듯이 집중하고 있다
그녀가 도착한 뒤에 영화는 더 좋아져서
우리는 그 이야기에 금세 빠져버리고 말았다
주인공이 마차에 숨어 마을을 빠져나갈 때
죄송합니다, 좀 나갈게요,
나는 어두운 극장을 나가 담배를 피우기로 했다
아내는 일어서는 나를 만류하였다가
영화가 끝나지 않아서, 영화가 점점 더 좋아져서
그대로 앉은 채 이야기에 다시 빠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밖에서 그녀의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여주인공이 마지막엔 꼭 잘되었으면
여자를 괴롭힌 마을도 다 불타버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지금은 너무 길고 좋은
그 이야기가 그녀를 언제 놓아줄지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아내만큼 이야기에 빠져 있지만
사람들은 햇빛 속에서도 얼마든지 불행해 보이고
이야기를 몰라도 이야기처럼 산다
뒤늦게 극장을 나올 그녀에게 들어야 할는지?
그래서 이야기 속 여자가 영원히 행복해졌다면
우리에게 다시 극장을 찾게 하는 힘은 무엇이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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