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컬렌 부인, 끝나지 않는 여름밤 강가에서 / 주하림 본문
사랑에 실패한 여자의 얼굴은 수척해졌다
어떤 날은 그것이 실패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연기도 서슴지 않았다 온통 섬광으로 가득했던 물결들이 해질녘으로 저물어가고 있었으며
이제 그녀는 소녀의 얼굴도 여인의 얼굴도 하고 있지 않았다
가끔 빈 우유병을 치우다 남자를 떠올렸고 소스라치게 놀라 병을 깨뜨리기도 했다
그것이 우유가 담긴 병이었다면 우유 범벅이 되는 걸로 끝났겠지ㅡ그러나 그와 예전 같은 사이였다면 내게 곁눈질로 살필 조심성이라도 있었으면 그의 프록코트를 붙잡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텐데 이맘때쯤 입술이 우유 범벅인 채로 웃음을 터뜨렸을 텐데
식탁이란 건, 이런 딱딱한 의자 따윈 이제 앉아서 쉴 수도 없고 갖고 싶어한 적도 없는데 누가 이따위 엉터리를 발명한 것인가
부여받았던 생기와 정열 향기를 모조리 빼앗기고 말라비틀어진 과일 신세로 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던져지겠지 남은 삶은
그때 차라리 떠나던 그의 마차에 올라타 마부가 한눈을 파는 사이 그의 눈앞에서 몸을 던졌다면! 그는 그런 짓을 원치 않을 테지 아니다 귀찮은 여자 따위 완전히 사라져주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신이여
신의 대리인이 찾아와
너는 그에게 푹 빠져 있을 때 카펫에 붙은 먼지 뭉치나
바닥에 굴러다니는 썩은 모과에 신을 비유하곤 했지
죄송합니다 제가 그땐 눈이 멀었습니다 하나에 취해 있었어요
그 사람으로부터 나를 빼앗길까봐 허나 조금도 조심성이 없었지요
그러나 왜 내가 신께 도와달라고 빌었을까요
그녀의 심정은 하나다 비가 그친 젖은 포플러나무 아래 도꼬마리, 개양귀비, 벌 들을 훔쳐본 뒤 미안해요 됐어요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말들을 되풀이했다 늘 그녀 발뒤꿈치를 밝히던 조명은 꺼졌다 그녀가 그의 손수건에 수놓은 꿈이나 오랜 이야기처럼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커다란 나비와 당신과의 아침은 얼마나 멋진지 신만은 아실 것입니다 허나 괴상한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떠드는 것만큼은 막아주셔요 이것이 노래라면 불러 숨이 쉬어질 텐데 그와 나누었던 대화 대신 갈라진 벽틈을 바라보며 현재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어젯밤 모르핀 몇 대를 맞았습니다 주치의는 수프에 적신 빵을 건넸지만 다리 잘린 식탁만 눈에 들어와요 샤워기 물에 피는 씻기지만 조금 기괴한 분위기의 여름...... 나는 어둡지만 여름 같았어요 수영장 일렁이는 빛, 빛을 향해 투신하던 모기와 나방 떼가 빠져 죽은 풀pool...... 지난날 사체로 떠오르는 잔상 속 오직 그대로서 죽어가며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에 대한 각서 / 이성복 (0) | 2023.07.12 |
---|---|
물에 비친 얼굴 / 주하림 (0) | 2023.07.11 |
흔들리는 의자에 앞치마를 걸어두면 푸대의 장미들이 하늘을 물들이지 / 주하림 (0) | 2023.07.11 |
라의 경우 / 안미린 (0) | 2023.07.10 |
무화과 숲 / 황인찬 (0) | 2023.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