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물에 비친 얼굴 / 주하림 본문
여름뿐인 영화
해안을 따라 달리는 파란색 덤프트럭
갈고리 모양의 상처
태양이 지지 않는 백사장
달려오는 땀에 젖은 사내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청년의 미소
회색 티셔츠가 진회색이 될 때까지 뛰어온 청년은 다치지 않았냐고 묻는다 내가 너에게 보여준 것은 약간의 빛 보풀이 인 클로버 팔찌 숨이 쉬어지지 않는 날들 아니 너무 긴 회색의 어둠 어느 날 너는 손전등처럼 축축한 그 안을 구석구석 비췄는데 마음이 커져가도 끝나도 너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들 나는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내 나라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
싱크대뿐인 부엌에 서서 말한다
네가 나의 나라니까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가 같은 방에 들어가면 그날부터 여름이야
사진을 남기자고 말한다
신에게 더는 되묻지 않는 질문들이 우기로 왔다 가고
내리쬐는 빛 아래
젖은 빨래 뭉치를 안고 찍은 그해 사진을
빨래가 타는 장면
불에 덴 내 손가락을 너는 입에 갖다댄다
누군가 문을 두들긴다
손님이 왔나봐 가만히 있어봐 너는 붉어진 손가락을 입에 물고
한 팔로 불을 끈다
빨래가 넘치고 누군가 문을 두들기고 문고리 잠금장치가 느슨해서 틈으로 내부가 보일 것 같다 내부가 흔들린다 우리가 키스하는 장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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