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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 임유영 본문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 임유영

홍제 2023. 11. 15. 22:43

 너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얼마만큼 그런가 하면 네가 좋게 들은 곡을 모아서 계절마다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앨범 커버도 손수 만들어서.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음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들려줘서가 아니라 참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인데. 야자 빼먹고 지하 클럽에 공짜로 벽화 그려주고. 포르투갈에 다녀온 다음부턴 어떤 가수가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분명히 믿고. 밴드 하고 음반 내고 음악가가 되었고. 무엇보다 너는 무슨 걱정이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 전주가 나올 때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벌써 다 알지. 술을 홀짝이며 기뻐하는 속삭거림에 너의 얼굴엔 만족스러워하는 미소가, 또 짐짓 당연하다는 표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냐 조금 기다려봐, 이 부분을 정말 좋아할 거야······ 그렇게 하나의 음악이 끝난 후에 다른 곡을 들려주다가, 한참 그러다가. 한참 멀리까지 강 건너 바다 건너 잘 가다가. 결국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틀어놓고. 깊이 취해 고개를 기울인 채 자기 앞의 술잔만을 바라본다. 거기에 무엇 중요한······ 어떤······ 저절로······ 고여 있다는 듯이. 새로운 물질을 발명해버린 사람처럼. 나는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 네가 무언가 슬픈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섭다. 그것이 영영 슬픈 생각일까 두렵다. 두려움. 창백한 형광등이 어둠을 박살낼 때 우리가 집에 가져가는 것. 이제 허겁지겁 우리끼리의 농담 같은 음악들로 각자를 도로 채워놓고, 제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술을 들이켜지. 난 그때마다 뭔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거야.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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