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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주스가 있는 테이블 / 강혜빈 본문
어느 오후를 상정해본다
빛이 넓고 수북한
여자는 몸을 말리기 위해
여름의 바깥으로 나설 것이다
반짝이는 물을 뚝뚝 흘리며
혼자 되기를 연습할 것이다
참외주스 파는 가게에 들어서며
눈만 내놓은 사람들을 힐긋거리며
마스크 속에서 입술을 내밀 것이다
참외주스라니‥‥‥
아삭아삭 씹히는 의아함
대나무 빨대의 믿음직스러움
너무 짜고 달고 쓴
시행착오의 맛 때문에
비로소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기도 할 것이다
통유리 바깥으로 은빛 트럭이 지나간다
철 지난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시간이 약간만 뒤틀려 여자는
앉아 있던 여자와 다른 여자가 된다
황홀하게
한 번 두 번 세 번
얼음을 더 넣어주는 마음
「이 정도면 괜찮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종류를 검색해보고
오늘의 마음에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참외 한 개를 케이크처럼 쪼개서
모두에게 나누어 주고 나면,
시원한 물이 줄줄 흐르는
느낌의 지도가 완성될 테지만
여자는 정성스레 사랑을 길렀다가
말려 죽인 적이 있어서
참외의 맛을 안다고 말할 수 없고
참외의 맛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어서
외돌토리라니‥‥‥
별안간 팔뚝에 오소소 돋는 소름처럼
별안간 믿어지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미래의 참외주스는 만들어지지 않을 테지만
여자는 몰라보게
바삭해져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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