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실전 / 윤은성 본문
결국 아무도 없는 장소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역 근처 공원들은 모두 같아 보인다.
내가 새를 배웠을 때.*
내가 새를 배웠을 때.
내가 눈앞에서 떨어지는 새들을 배웠을 때. 그 너머에 펼쳐진 건 먼지 낀 공기 속의 양평동이었다. 평평하고 텅 빈 손. 회색의 널따란 활엽수 잎.
천천히.
인사를 먼저 해야겠지.
얼굴이 필요한 일이겠고.
하루 중 얼굴에는 손바닥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겠고.
사력과 순발력은 같은 말일까 아닐까.
눈을 한 번 뜨면 되는 일이라고는 들었었다.
뛰어야 하는 줄만 알았어.
나도 마찬가지. 뛰었고 또 뛰었었고.
결국,이라는 말 다음 잠깐의 침묵이 근처에 있었다.
결국 캄캄한 트렁크가 집어삼키고 있는 것. 이것은 나의 기억인가, 당신의 전망인가. 묻지 않으면
당신을 만나지 않으면
얼굴 속 새들이 죽게 될 것 같다.
또
뛰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미용실 앞의 얼룩진 수건들은 마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먼지가 많은 날에는 새를 뱉어야 할까, 삼켜두어야 할까.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서 내 앞으로 뛰어가
자꾸 사라지고 있는데.
* 최승자, 「내게 새를 가르쳐주시겠어요?」(『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에서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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