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홍제

실전 / 윤은성 본문

실전 / 윤은성

홍제 2023. 11. 26. 23:05

 결국 아무도 없는 장소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역 근처 공원들은 모두 같아 보인다.

 

 내가 새를 배웠을 때.*

 내가 새를 배웠을 때.

 내가 눈앞에서 떨어지는 새들을 배웠을 때. 그 너머에 펼쳐진 건 먼지 낀 공기 속의 양평동이었다. 평평하고 텅 빈 손. 회색의 널따란 활엽수 잎.

 

 천천히.

 

 인사를 먼저 해야겠지.

 얼굴이 필요한 일이겠고.

 하루 중 얼굴에는 손바닥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겠고.

 

 사력과 순발력은 같은 말일까 아닐까.

 눈을 한 번 뜨면 되는 일이라고는 들었었다.

 

 뛰어야 하는 줄만 알았어.

 나도 마찬가지. 뛰었고 또 뛰었었고.

 

 결국,이라는 말 다음 잠깐의 침묵이 근처에 있었다.

 결국 캄캄한 트렁크가 집어삼키고 있는 것. 이것은 나의 기억인가, 당신의 전망인가. 묻지 않으면

 당신을 만나지 않으면

 

 얼굴 속 새들이 죽게 될 것 같다.

 

 또

 뛰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미용실 앞의 얼룩진 수건들은 마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먼지가 많은 날에는 새를 뱉어야 할까, 삼켜두어야 할까.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서 내 앞으로 뛰어가

 자꾸 사라지고 있는데.

 

 

 * 최승자, 「내게 새를 가르쳐주시겠어요?」(『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에서 변용.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단락 / 윤은성  (1) 2023.11.26
사업장 / 윤은성  (1) 2023.11.26
젖은 가지들 / 이날  (1) 2023.11.21
아침 / 임유영  (0) 2023.11.15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 임유영  (0) 202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