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문지기는 자기 자신을 들여보내는 데 실패해서 운다 본문

나에겐 함께 묶어 쌍으로 자주 듣곤 하는 노래 두 곡이 있는데, 그건 바로 빛과 소금의 '그대 떠난 뒤'와 나미의 '슬픈 인연'이다. 나 이제 외로움을 알겠다는 앞의 곡의 가사와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다는 뒤의 곡의 가사가, 마치 제 나름의 지난한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뒤 모든 것을 다 배운 척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도 배우지 못한 어느 개인의 내면 속 치열한 공방처럼 느껴지곤 하기 때문이다.
난 이제 외로움을 충분히 알아 그걸 이겨낼 수 있어
선언하면서도
끝내 자신이 외로움을 견딜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김행숙의 시집 에코의 초상에 수록된 시 '문지기'를 읽는다. 문지기가 맞이하는 가장 마지막 방문객은 다름 아닌 문지기 스스로일 것이고, 만약 문지기가 자신이 지키는 문을 통과할 수만 있다면 그는 더 이상 문지기가 아닐 테지만, 문지기는 문지기로 남아 있어야 자기 자신일 수 있으므로 결국 스스로를 문 안으로 들여보내는 데 실패한다.
그리고 그래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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