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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지구 한 바퀴 / 고민형 본문

지구 한 바퀴 / 고민형

홍제 2023. 3. 9. 23:25

  파티에서 심리학자가 내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 얻으려고 하는 것은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거라고.

  나는 들고 있던 야구 방망이, 사각팬티를 내려놓고

  두 귀에 쑤셔 박았던 휴지 뭉치를 꺼냈다.

  심리학자에게 물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잃어버린 게 뭐죠?

  당신이 해준 이야기를 이미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모르겠습니다. 잃어버린 건 너무도 많지만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을

  잃어버린 기억은 없어요.

  어머니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가길 원했습니다.

  나는 몇 번 시험을 망쳤고

  또 몇 번 좋은 성적을 거두었죠.

  시험은 동전 던지기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이 나오도록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죠.

  연습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엄지손가락으로 동전을 튕겨 눈높이까지 던지기.

  한 바퀴를 완성하는 순간 낚아채기.

  의심스럽다면 확인하기 전에 손바닥을 뒤집기.

  나는 그걸 10살 때부터 했어요.

  방 안에서

  혼자

  동전을 던졌습니다. 

  앞면이 나오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때 밖으로 나오려고요.

  그 동전은 다른 모든 동전과는 다르죠.

  그 동전은 다른 모든 동전을 합한 것보다 큰 액수를 가집니다.

  그런데 그 동전은 지금 사라지고 없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건 '어머니의 사랑'인가요?

  오 이런, 당신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했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녀는 여느 아이들의 어머니와 비슷했죠.

  그녀는 내 입에 뽀뽀하고

  나의 귀를 가볍게 꼬집는 걸 좋아했습니다.

  내가 교과서 대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고양이처럼 몰래 다가와

  내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내리쳤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목이 떨어져 나간

  광대가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끔찍하군요. 그렇다면

  성인이 된 뒤의 사랑도 순탄치 못하였겠어요.

  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기 창문 앞의 화분이 계속 신경 쓰여요.

  날이 쌀쌀해지면 저 나무는 죽을지도 몰라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보고 있고

  생각하며, 잊었다가

  다시 떠올리고 있어요.

  내가 저 나무를 조금만 안쪽으로 옮기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이 집 주인을,

  그는 지금 보드카를 한 병 마시고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지만,

  흔들어 깨워

  화분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알리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나는

  사실 당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단지 '그것'을 찾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게 맞았을 거예요.

  물론 그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파티에 있는 내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도착할 수 있는

  어느 사막에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얘기만큼

  비논리적이고, 엉터리 말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기는 정말 사막이고

  사막에 있는 내가 파티에 있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지구의 양극

  N극과 S극과 같이

  우리는, 나와, 그는, 그와 나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기장과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파티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나서고

  뜨거운 모랫바닥 위에서

  미친 것처럼 돌아가는 미러볼 아래서

  서로를 밀어내고

  밀어 당기고

  있습니다. 

  나는 그때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던 거죠.

  당신은 조금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리학자가 내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은 식기처럼 서랍 안에 넣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때때로 그것들은

  스스로 일어나 서랍장을 마구 찍고 긁고

  발광할 테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모랫바닥 아래 숨은 전갈처럼

  고요하게 보일 거니까요.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시가 될 수 있을까요.

  겨울이 다가오는 울창한 숲

  그걸 비추고 있는 창문 앞에 선

  화분처럼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파티장의 나는

  사막의 나와

  끊임없이

  동전을 주고받을 것이고,

  동전이 동전의 모양으로

  동전만 한 운석이

  지니는 힘을 갖게 될 때까지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걸 휘두르는 지구의 중력처럼

  나 또한 나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것을 휘두르는 것.

  그것은 왜 계속 그것을 하게 만드는 건가요.

  심리학자는 이미 잠들었고

  파티의 한구석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열정적인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구멍으로

  서로의 것을

  넣어주고 있었다.

  그들의 키스 위로

  화가가 마지막으로

  코팅을 위해

  투명한 물감을 덧칠하는 것처럼

  어떤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과 키스는 그 이후로도 그치지 않을 것이었다.

  지구를 돌며

  달라지는 계절에 따라

  몇 벌의 옷을 갈아입기는 할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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