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여는 기쁨 / 이기리 본문
누가 나를 보며 웃지
멀리서부터 양팔을 흔들다가 과일 꾸러미를 한가득 끌어안고
선홍빛 잇몸이 살짝 드러나는 얼굴을 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어
분명 모르는 사람이야 내가 알 수 없는 사람이야
이곳은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던 곳이고
알 만한 사람들이 이곳에 살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유가 되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게 아니거든
깨끗한 눈빛을 건네고 꼭 껴안아줄 것처럼
점점 걸음에 속도를 내며 오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아무것도 줄 게 없고 바라는 일이 많은데
당신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이 많아 보여
알아들을 수 없을 거야 모르는 얘기를 듣다 그만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당신이 찾는 사람은 내가 아니에요,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잡은 손은 놓을 때까지 놓지 않을 거야
빛과 함께
다채롭게 쌓인 과일들의 껍질이 반짝이지
당신은 내 옆에 바구니를 내려놓더니
뒤에 서 있던 품에 안기고는 펑펑 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들
잠시 쉬어야 하는 손길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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