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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원래 엔딩은 다 슬퍼 / 류휘석 본문

원래 엔딩은 다 슬퍼 / 류휘석

홍제 2024. 1. 23. 09:34

 영화가 끝난 검은 화면에

 우리는 픽셀처럼 남아

 

 마주앉은 정면에 손을 뻗는다

 

 어디 갔어

 

 더욱 단단히 커튼을 치고

 

 여기 있어

 

 다시

 시작되는 영화

 생각보다 지루하겠지

 

 믿어봐 이번에는 정말

 

 커튼이 거대한 붓처럼 실내의 빛을 죄다 빨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문 닫힌 팔레트 속 물감처럼

 표면부터 서서히 굳어가고

 

 영화는 생각보다 더 지루했다

 주인공이 울고

 이제 막 엔딩이 시작되려는데

 

 네가 화장실에 간다

 

 물소리와 함께

 장면이 멈추면

 

 나는 홀로 정지된 주인공의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은 정해진 만큼만 울기로 약속해서

 멈춘 동안의 슬픔은 책임질 사람이 없고

 

 질감이 사라진 실내에 우두커니 놓인 나는

 얼굴을 더듬어 내 손을 확인한다

 

 한참 뒤에 네가 나타나

 

 못 들었어

 

 그러면

 

 우리는 다시 영화 앞에 앉아

 타이밍을 잘 맞춰 울어야 할 텐데

 

 다음 영화가 자동 재생되고

 다시 손을 잡아도

 

 휘저은 서로의 손에서 거품만 묻어나

 뭘 잡아도

 뭘 잡은지 모르겠을 때

 

 우리는 손톱을 떼어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생살을 밀어내고 사랑하는 우리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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