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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비밀과 유리병 / 이기리 본문

비밀과 유리병 / 이기리

홍제 2023. 2. 13. 09:41

  오래전 좋아했던 선배 집엔 뉴기니아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수업이 일찍 끝나면 언덕바지에 있는 선배 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 새를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했다

 

  우리가 탁자에 놓인 빈 유리병에 담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하는 동안

  오목하고 하얀 새장 안에서 뉴기니아는 홰에 가만히 앉아

  자신의 붉은 깃털을 뽑고 있었다

 

  그건 털갈이를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몸 안쪽까지 파먹는 부리의 어둠을 떠올리자

  창밖에선 해가 지고 있었다

 

  채광이 좋은 남향집에서 선배와 저녁을 맞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한 손으로 감쌀 수 있는 이 작고 깨끗한 유리병을

  언제나 우리 사이에 올려 두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죽었어, 알고 있었어?

 

  그 이 후로도 우리는 몇 번 더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더 이상 바라볼 새가 없고 죽은 새를 이야기하지 않고

 

  해가 지는 풍경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쥐고 있던 유리병을 놓쳤다

 

  흠 하나 없이 투명한 유리병을 보이지 않는 비탈길의 끝을 향해 굴렀다

  선배는 그 안에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유리병을 주워 최초로 담을 것을 생각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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