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데리러 가 / 김누누 본문
온종일 물놀이를 신나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가 잘라 놓은 수박이 있다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와구와구 수박을 먹으면
바닷물과 과즙이 뚝뚝 떨어지고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수박도 안 먹는다
그냥 가만히
수박 먹는 나를 보는데
아까 바닷가에서 어떤 사람이 나한테 인사했다?
라고 말하자
내일부터 바다에 가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 할머니는 처음 봤다
이제 그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도시의 여름밤은 찬란하고
아주 덥다
애인과 공원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손을 잡은 채로 그냥 걸었다
서로 얼굴을 보다가
그냥 가만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가지고
하얀 강아지가 너무 귀엽다
애인은 가끔씩
삼색 고양이처럼 웃는다
이제 그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기일이 되어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다 끝난 일인 것처럼 말하는 게 미워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 버렸다
저 멀리 손짓하는 누군가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이제 그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강기 / 이장욱 (0) | 2023.02.13 |
---|---|
슬픔을 표현하는 네 개의 선 / 김누누 (0) | 2023.02.13 |
비밀과 유리병 / 이기리 (0) | 2023.02.13 |
정말 사과의 말 / 김이듬 (0) | 2023.02.10 |
0도의 밤 / 하재연 (0) | 2023.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