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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 김행숙 본문
비 때문에 실내와 실외가 분명하게 구분되었습니다. 폭풍우의 효과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찻잔 속의 검은 물은 고요합니다. 아름다운 찻잔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입니다. 값비싼 것이긴 하지만 쩝, 도자기 하나쯤이야. 당신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입니다. 소란 피우지 말고 검은 물처럼 내 안에 머무르시길. 내 안에서 마침내 임종하시길.
바닷가의 소나무들이 한쪽으로 휘어졌듯이 나는 당신을 향해 긴 팔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자라는 걸 확인하려고 합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그것 때문에 당신은 괴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눈동자, 당신을 위해 쉬지 않고 테이프를 감는 녹음기, 당신을 보여 주고 당신을 들려주는 나는 당신과 거의 동일한데도 말이죠. 마음속을 한없이 파고드는 것은 나쁜 성향입니다. 나를 따돌리지 마세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좋습니다, 계속, 계속 속이세요. 나는 믿는 척하다가 믿겠습니다. 입술이 마음을 불러내지 않으면 끝없이 타오르는 마음은 입술을 태울 겁니다. 나는 그것을 악마라고 부릅니다. 나는 당신의 미래에 먼저 가 있고 싶습니다 .
당신의 미래에서 당신을 끌고 가겠습니다. 당신은 악마를 본 것 같군요. 나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달아났나요? 헐떡거리는 내 사랑, 내 아기, 누구의 반대편에서 깨어났나요? 꿈의 유리 조각은 내가 치우겠습니다. 잘못 만지면, 만지면...... 그러니까 아, 이 핏방울은 나의 것입니다. 이것은 진짜 피입니다. 개의치 마세요. 우리는 한몸이니까. 이제 당신에게 당신은 보이지 않고 나만 보여요. 그렇죠?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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