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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그해 봄에 / 박준 본문

그해 봄에 / 박준

홍제 2023. 2. 24. 15:43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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