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 김충규 본문
라일락이 보일락 말락
어디에 숨었니? 내 사람
공기가 삭아 내리는 소리
라일락 향기 지독해서
숨어버린 거니? 내 사람
라일락을 가진 집의 지붕 위에
찌그러진 심장 반쪽
다급히 숨은 거니? 내 사람
저 집은 죽은 고래
저 심장은 고래의 각혈 덩어리
내가 먼 바다에서 잡아온 고래가
라일락 향기에 죽었다
내가 이 세상에 낳아보지 않은
희미한 딸이
멀리서 손짓하는 한참 오후,
눈 비벼 보면 아지랑이
삭은 공기를 질질 끌고 가는
허파에 구멍이 뚫린 늙은 바람
어디 숨어 우는 거니? 내 사람
내 심장을 꺼내 먹이면
고래가 숨을 얻어 허공을 헤엄쳐 오를까
그러면 나타날 거니? 내 사람
라일락이 피기 전에 온다 해놓고 못 와서
어둠이 징검 징검 허공 딛고 오도록
꼭꼭 숨어버린 거니? 내 사람
내가 심장을 꺼내기도 전에
심장에 불이 타도록
라일락 다 지고 고래 다 썩고
그런 뒤에 나타나려니?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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