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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 김충규 본문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 김충규

홍제 2023. 2. 24. 16:08

  라일락이 보일락 말락

  어디에 숨었니? 내 사람

 

  공기가 삭아 내리는 소리

 

  라일락 향기 지독해서

  숨어버린 거니? 내 사람

 

  라일락을 가진 집의 지붕 위에

  찌그러진 심장 반쪽

  다급히 숨은 거니? 내 사람

 

  저 집은 죽은 고래

  저 심장은 고래의 각혈 덩어리

 

  내가 먼 바다에서 잡아온 고래가

  라일락 향기에 죽었다

 

  내가 이 세상에 낳아보지 않은

  희미한 딸이

  멀리서 손짓하는 한참 오후,

  눈 비벼 보면 아지랑이

 

  삭은 공기를 질질 끌고 가는

  허파에 구멍이 뚫린 늙은 바람

  어디 숨어 우는 거니? 내 사람

 

  내 심장을 꺼내 먹이면

  고래가 숨을 얻어 허공을 헤엄쳐 오를까

  그러면 나타날 거니? 내 사람

 

  라일락이 피기 전에 온다 해놓고 못 와서

  어둠이 징검 징검 허공 딛고 오도록

  꼭꼭 숨어버린 거니? 내 사람

 

  내가 심장을 꺼내기도 전에

  심장에 불이 타도록

 

  라일락 다 지고 고래 다 썩고

  그런 뒤에 나타나려니? 내 사람